내게는 오래전부터 준비해 온 꿈이 있었다. 2025년 8월 내 이야기를 담은 책을 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 달 후 이탈리아로 1년간 디지털 노마드를 떠나는 것이다. 상상만으로도 벅차올랐다. 출판사에서 미팅을 제안해 계약을 했고, 출간 준비가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퇴고, 디자인, 인쇄 일정까지 모두 확정되었고, 8월 출간을 앞두고 막바지 작업들만 남겨둔 상태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한 통의 메일이 도착했다. 발신인은 출판사였다. 제목을 읽는 순간 심장이 내려앉았다. 출판사 측에서 온 출간 취소 통보였다.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지?’ 해당 책의 출판을 담당하던 편집장과 편집자가 동시에 퇴사해 더 이상 출간 작업을 진행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내용과 함께, 출판사의 100% 귀책이기에 원고와 출판권 등 모든 권리는 저자에게 있다는 말도 덧붙여져 있었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올해 초부터 함께 만들어 왔는데 이렇게 무책임하게 통보한다고…?’ 이유를 물었지만, 회사 내부 사정상이라는 답변으로 돌아왔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곧 출판 취소와 동시에 올해 가장 중요한 계획까지도 무너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출간 한 달 후 이탈리아 포지타노에서 디지털노마드를 시작하도록 세팅해 놨는데 모두 어그러졌다. 출간을 해외에서 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다. 나 역시도 해외에서 원고를 다듬고 출간 작업을 병행하는 장면을 머릿속으로 그려 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게 책 출간은 단순한 ‘출판’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이 책에 담긴 내용은 퇴사 후 1인 브랜드가 되기까지의 3년, 그 치열하고 불안했던 여정을 기록한 서사와 배움이었다. 커밍쏜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1장의 마지막 페이지이자, 커밍쏜 2장의 문을 여는 시작점이었다. 그리고 디지털 노마드는 바로 그다음 장, 완전히 새로운 서사의 첫 문단이었다.
그래서 1장을 정리하지 않고는 2장을 시작할 수 없었다. 도전의 기억이 희미해지기 전에, 그것을 한 권의 책으로 정리해 두고 싶었다. 또한 오프라인에서 독자들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책을 읽고 주인공이 되어 가는 누군가와 북토크를 하고, 메시지에 공감하는 분들과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그만큼 내게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의미를 가졌다. 그래서 출간이 불투명해 졌을 때, 디지털 노마드 프로젝트 역시 무기한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출간이 취소되고 이후 프로젝트들이 정리되고 나서, 찾아온 감정은 자괴감이었다. 내가 정말 더 큰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었다면, 내 구독자 수가 더 많았다면 출판사에서 쉽게 계약을 해지했을까? 혹시 ‘이 저자만큼은 놓치면 안 된다’는 확신을 심어 주지 못한 것은 아닐까?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나를 향한 부정적인 감정이 깊어졌다. 사실 한동안 무기력에 빠졌다. 콘텐츠가 손에 잡히지 않았고, 진행 중이던 프로젝트들 역시 속도가 느려졌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손을 놓고 있는 사이에도 출판 과정을 공유한 콘텐츠들에서는 책을 기다린다는 댓글이 꾸준히 달렸다.
커밍쏜 님 따라가려고 책만 기다리고 있어요!
8월 7일 출간일만 기다립니다. 그날 바로 서점으로 오픈런 합니다.
그 댓글들을 보며 다시 알게 됐다. 지금 내가 이렇게 주저앉아있는 동안에도, 누군가는 여전히 내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 내가 집중해야 하는 건, 내 메시지에 공감해 주는 분들이라는 것을, 내 이야기에 가치를 느껴 주는 분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가만히 있을 때가 아니었다. 지금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다시 움직여야 했다.
생각해 보면 나는 언제나 원하는 것을 한 번에 이룬 적이 없었다. 입사 전 유튜브를 처음 했을 때도, 퇴사 후 유튜브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을 때도, 커뮤니티를 만들었을 때도 항상 서툴렀고 실
패했다. 하지만 최악의 상황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배우고 성장하며 원하는 것을 결국 이뤄내 왔다. 이번 역시도 그때와 비슷한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판단이 들었다. 바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었다.
혼란스러울 때마다 나는 딱 하나의 기준을 세운다.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이 둘을 명확히 구분하고,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영역에만 모든 에너지를 집중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브랜딩 초기, 유튜브에 콘텐츠를 올려도 조회수나 반응은 기대만큼 나오지 않았다. 조회수나 구독자 수는 운의 영역이 포함된 결과다. 내가 통제할 수 없다. 바꿀 수 없는 것에 집착하면 불안만 커졌다. 그럴 때마다 나는 결과가 아닌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곳에 집중했다. 콘텐츠의 퀄리티와 업로드 빈도는 내 손 안에 있다. 그래서 그 두 가지에만 집중했다. 그 결과, 반응이 따라오기 시작했다. 조회수와 구독자 수가 조금씩 오르기 시작했다.
그때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상황과 결과에 집착할수록 불안은 커지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할수록 길은 열린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이번 출판사 계약 해지라는 예상 밖의 상황 앞에서도 같은 기준을 다시 꺼냈다. 지금,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결과와 상황을 통제할 수 없다면, 내가 원하는 결과에 가까워지도록 만드는 ‘행동’부터 다시 시작하면 된다. 의외로 선택지는 꽤 많았다.
첫 번째는 이 상황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일이었다. 창피함과 무력감에 혼자 끙끙 앓기보다는, 지금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기존 출판사와의 계약이 해지되었고 완
성된 원고가 있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려야 했다. 마치 새로운 직장을 찾기 위해 이직 시장에 나섰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처럼. 다른 사람이 알아주길 기다리기보다 내가 스스로를 홍보해야 했다.
두 번째는 내가 먼저 움직이는 일이었다. 기획 의도, 타깃 독자, 마케팅 전략까지 준비된 상태였기에 이 책이 어울릴 출판사에 내가 먼저 제안서를 보내는 방법도 존재했다.
두 가지 한 번에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바로 이 상황을 솔직하게 구독자들에게 공유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었다. 책을 기다리는 분들로부터 응원받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고, 운이 좋다면 이 영상이 퍼져 출판사들로부터 제안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용기를 내어 카메라를 켰고, 현 상황을 담담하게 담아 영상을 촬영했다.
“현재 출판사와는 계약이 해지되었고, 함께 책을 만들어 갈 새 파트너를 찾아야 하는 상황입니다. 여러분들 응원부탁드립니다.”
사실 걱정과 불안감도 있었다. ‘올렸는데 아무도 반응이 없으면 어떡하지?’ ‘그럴 줄 알았다는 식의 비아냥으로 가득하면 어떡하지?’ 하지만 그건 내가 예측할 수도 컨트롤할 수도 없는 결과였다. 그렇다면 내가 해야 하는 일은 촬영한 영상의 업로드 버튼을 누르는 것이었다.
그렇게 결심하고 콘텐츠를 업로드했다. 놀라운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1분, 2분이 지나자 댓글이 빠르게 달렸다. 상황 자체를 공감하며 응원을 해 주는 댓글들이 이어졌다. 어떤 분들은 내 일처럼 분노하며, 길고 진심 어린 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놀랍게도 1시간도 지나지 않아 출판사들이 출간 제안 메일을 보내기 시작했다.
“커밍쏜 님을 오랫동안 지켜봐 온 구독자입니다. 출간 제의드립니다.”
“메시지에 깊이 공감했고, 꼭 함께하고 싶습니다.”
1인 출판사부터 대형 출판사들까지 출간 제의가 쏟아졌다. 그리고 내 이야기를 가장 진정성 있게 담아 줄 출판사와 연결될 수 있었다. 여기서 다시 한번 실감했다.
브랜딩이란 콘텐츠에서 잘나가는 모습만 보여주는 게 전부가 아니었다. 지금의 고민, 힘듦, 위로가 필요한 순간까지도 담담하게 공유하는 것이야말로 팬들과 깊은 유대감을 쌓을 수 있는 계기다. 팬들이 응원해 준 덕분에 더 많은 출판 관계자에게 퍼졌고, 덕분에 책 출간을 이어 갈 수 있었다. 솔직하게 상황을 드러낸 용기가 팬들의 응원으로, 생각치 못한 더 큰 기회로 이어졌다.
목표를 이뤄 나가는 과정에서 번아웃이 오기도 하고, 고민과 힘듦이 찾아오기도 한다. 그 순간을 혼자 짊어지기보다는, 나를 응원해 주는 분들에게 솔직하게 털어놔 보자. 그때 관계는 단순히 구독자와 크리에이터의 관계를 넘어, 진심으로 ‘서로의 팬’으로 바뀌게 된다.
두려워하지 말자. 힘들다면 기꺼이 공유하자. 당신이 망설이며 숨기는 힘듦과 고민은 누군가에겐 공감이고, 응원의 이유가 된다. 그 순간 사람들은 당신을 ‘나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와
비슷하지만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으로 바라본다. 그렇게 그들은 단순한 구독자를 넘어 당신을 응원하는 팬이 된다.
지금까지 당신의 이야기에 힘을 얻어 온 사람들은, 당신이 힘들 때 가장 먼저 달려와 응원할 것이다. 그리고 그 응원이 당신이 포기하지 않고 계속 나아가야 할 이유가 되어 줄 것이다. 완벽하게 보여야 한다는 함정에 속지 말자. 언제나 오래도록 응원받는 브랜드는 완벽한 모습이 아니라 진정성 있는 모습에서 시작되니까.
* 본 내용은 10/27 출간되 커밍쏜 [퇴사 후 나를 브랜딩합니다] 책 내용 중 일부입니다 |